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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짜와 억압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은 영화, 아가씨

by 집순이의 삶 2025.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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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공식 포스터

1. 원작 핑거스미스의 영화화

 

영화 <아가씨>는 2016년에 나온 박찬욱 감독 영화이다. 주인공인 아가씨로는 김민희, 아가씨의 하녀인 척 위장한 도둑은 김태리, 그밖에 하정우, 조진웅, 김해숙, 문소리 등이 나온 영화이다. 영화는 영국의 작가, 세라 워터스가 쓴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다. 세라 워터스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퀴어 로맨스 3부작을 쓴 작이다. <티핑 더 벨벳>, <끌림>, <핑거 스미스>를 묶어서 3부작이라고 부른다. 그중 <핑거 스미스>는 영국 BBC에서 3부작짜리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다. 그것을 한국에서 산업화 시대가 아니라, 일제감정기를 배경으로 만든 것이 <아가씨>이다.

 

2. 이모부에게 억압당하며 자란 아가씨

 

이 영화의 주인공, 이즈미 히데코 아가씨는 어릴 때 부모를 여윈 사람이다. 어머니는 히데코를 낳을 때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아버지도 그 슬픔으로 죽었다. 그래서 히데코에게는 이모가 어머니인 셈이다. 하지만 어머니처럼 따르던 이모도 벚나무에 목을 메어 죽는다. 그래서 이 때문에 신경 쇠약으로 밤마다 잠을 설친다. 하루의 일과라고는 저택 근처 뒷동산에 산책가거나 서재에서 이모부가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낭독회에서 낭독할 책을 읽으며 연습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모부의 변태적인 성향 때문에 낭독회에서 읽는 책은 야설이다. 자신의 재산을 탐내는 이모부와 머지 않아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히데코는 이것에 갑갑함을 느끼지만, 혼자서는 어찌할줄 모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후지와라 백작과 함께 대신 정신 병원에 넣어버릴 하녀 하나를 자기로 둔갑시키고, 히데코 본인은 자유로워질 생각이다. 하지만, 히데코의 마음은 점점 속은 줄도 모르고 착실히 하녀 연기를 하는 숙희에게 향하고 있다.

 

3. 대도의 딸, 숙희

 

숙희는 대도의 딸이다. 그래서 하정우가 맡은 역인 후지와라 백작과 함께 저택으로 들어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린다. 숙희의 일은 단 하나, 옆에서 히데코를 꼬드겨서 후지와라 백작과 결혼시키는 것이다. 결혼시킨 후, 히데코를 정신 병원에 보내고, 그녀의 재산을 후지와라 백작과 나눠 갖는 것이 숙희의 본래 목적이다. 하지만 하녀로 히데코를 옆에서 모시고 보살필수록 숙희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윽고 숙희는 속은 것이 히데코가 아니라 자기임을 깨달는다. 그래서 숙희는 히데코와 함께 히데코의 이모부와 후지와라 백작에게 벗어나 자유로워질 생각이다. 숙희는 당돌하고 순수하다. 이런 역할 때문에 박찬욱 감독은 신인배우를 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에서 뽑힌 사람이 바로 김태리이다.

 

4. 엄마가 없는 주인공들의 사랑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엄마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고 있다. 히데코는 숙희에게서 보살핌을 받으며 엄마의 흔적을 찾는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 대사를 하는 히데코에게 숙희는 단호하게 말한다. 태어나는 게 잘못인 아기는 없어요. 갓난아기랑 얘기할 수만 있었어도 아가씨 어머니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에요. 너를 낳고 죽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고. 숙희는 히데코를 마치 아기처럼 열심히 챙긴다. 이를 갈아주기도 하고(이 장면은 원작가도 최고의 장면이라고 뽑았다.), 옷을 입혀주기도 한다. "여태껏 내가 씻기고 입힌 것 중에 이렇게 예쁜 것이 있었나?"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엄마를 찾으며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의 모습도 어딘가 엄마의 것을 닮아있다. 영화 <아가씨>의 작가인 정서경 작가도 둘째를 육아하면서 사랑에 대한 감정을 누군가를 아기로 삼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있다.

 

5. 여태의 퀴어 영화와는 다른 영화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퀴어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 <아가씨>는 여태껏 봐온 퀴어 장르랑은 다른 점이 있다. 히데코나 숙희가 서로 사랑할 때, 동성애라는 사실에 따른 죄책감이나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사랑만 할 뿐이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이를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히데코와 숙희가 마침내 이모부의 저택을 나가 넓은 들판을 뛰어갈 때 통쾌함마저 느낀다. 누구나 매력적으로 느끼고 재밌어하는,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영화이다. 평론가들도 여태 나온 박찬욱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명쾌하고, 진취적이며 에로틱한, 박찬욱 감독식 로맨틱 코미디라고 평했다.